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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서평단 2기 :: 총장과의 데이트 후기

비주얼라이즈 2014. 3. 3. 14:54

날씨가 쌀쌀해지던 지난달 셋째 주, 도서관에서 의미 있는 행사에 다녀왔다. 

바로 총장님과 학생들이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서로(書路) 통(通)하기>라는 행사였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참가신청을 하고 도서관에서 선정도서인 <풀 하우스>를 받았다.


 


처음 받아보니 정말 선정도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꽤 두껍기도 했고, 겉표지에 '하버드 생물학자가 밝힌 진화론의 진실'이라는 엄청난 문구가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선뜻 책 표지를 넘기기가 어려웠지만, 이 책을 통해 총장님과 대화를 한다는 생각에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런데 읽다보니 걱정과는 다르게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4할 타자의 딜레마'와 같은 친숙한 주제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메모를 해두고, 중간 중간 개인적인 생각을 곳곳에 적으면서 총장님과의 데이트를 준비했다.





행사 당일, 중앙도서관 인문과학실 로비에 테이블이 놓여졌다.

 큼직큼직한 카메라도 설치되고, 슬슬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준비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행사규모가 컸다. 그만큼 기대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다.


 여기저기 살펴보는 사이, 총장님이 자리하셨고 곧이어 행사가 시작되었다.

 한 명씩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고, 총장님께서 행사 목적을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이어 총장님을 시작으로 한 사람씩 책을 접한 소감을 나누었다. 



소감은 짧게 몇 마디씩만 말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번 행사에서 <풀 하우스>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총장님과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사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소통의 도구'였다. 


과제 준비를 하듯 부담을 갖고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내 차례가 되면 뭘 말하지?'라는 생각에 초조해 하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자리에는 신입생부터 졸업학기를 다니는 학생, 그리고 대학원생까지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했는데,

 <풀 하우스>를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던 것 같다.


 총장님께서는 이번 행사에 <풀 하우스>를 선정도서로 하신 이유가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도서 선정을 하는 단계에서부터 '소통'이라는 행사의 본래 의미를 고려하신 것 같았다.


법학을 전공하신 총장님은 대화 중 생물학부 학생에게 어려운 개념에 대해 질문하시기도 했는데,

 총장과 학생이라는 지위를 떠나,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날 총장님 께서는 노트에 빼곡하게 생각을 적어 오셨을 만큼 행사에 열정적인 모습이셨다. 

'풀 하우스'에서 부담스러운 생물의 역사를 '4할 타자의 딜레마'로 쉽게 풀어 말해주었던 것처럼,

 '총장과의 데이트'라는 이름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총장님께서 대화중에 관련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점점 긴장을 풀고 자유로운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해주실 때는 인생 선배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 하셨고,

 학교 행정에 관한 질문에 있어서는 동국대학교 총장으로서 학교의 입장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이번 <총장과의 데이트>에 참여하여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의 복잡했던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그런 일이 아니라, 

나와 내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니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이런 좋은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한다. 

행사를 마친 뒤 문득 <풀 하우스>의 표지 문구가 다르게 느껴진다.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